‘여자 인턴 뺨을.
.’
과거 박경철 의사의 ‘시골 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에 발췌된 내용이다.
응급실로 실려 온 환자는 위급한 상황이었다.
환자를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구급차에 태우고 근처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이때 병원에 준비되어있던 수혈 가능한 피를 모조리 구급차에 실었다.
대학병원으로 가는 길이었다.
나는 당시에 뒷자석에 동승했던 인턴에게 지시했다.
“10분마다 환자의 혈압, 맥박 체크하고 혈액 부족하면 새로운 수혈액으로 교체해”
앞자리에 앉아 있었던 나는 그동안 정신없이 다른 곳에 연락을 취했다.
대학병원에전화하여환자의상태를설명하고집도를부탁을해야했다.
그러던 중에 갑작스럽게 환자 보호자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이봐요!! 이렇게 피가 안 들어가도 돼요?”
그 순간 나는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봤다.
나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인턴이 환자의 피가 모자란 상태였음에도 수혈액을 교체하지 않았다.
“야! 빨리 혈액 교체하지 않고 뭐해!”
응급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지키려고 노력했음에도 그 순간만큼은 지킬 수 없었다.
다급해진 나는 언성을 높였고, 재빨리 환자에게 다가가 상태를 확인했다.
이 상황에서도 인턴은 계속 혈액이 아닌 수액만 바꿔댔다.
결국 나는 여성 인턴에게 호통을 치며 옆으로 밀쳐냈다.
초 응급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즉시 환자의 혈액팩을 교체하고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곁을 지켰다.
다행히도 빠른 처치로 환자의 생명을 지켰다. 당시에만 해도 나는 응급상황에 서툰 인턴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후배 의사에게 들은 이야기는 내 귀를 의심하게 했다.
“형, 그 친구 ‘여호와의 증인’ 신도예요..”
순간 머리가 아득해지며 눈앞이 깜깜해졌다. 응급환자 앞에서 머뭇거리던 인턴의 얼굴이 눈앞을 스쳐 지나가면서, 피를 흘리며 처참하게 쓰러진 환자의 손을 잡고 간절히 기도하던 환자 보호자의 얼굴이 겹쳐졌다.
결국, 나는 태어나서 여자의 뺨을 때렸다.
그리고 시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인턴은 또 다른 문제를 일으켰다.
7살 아이가 교통사고를 당하여 과다출혈로 죽어가던 중이었다.
그러나 부모는 ‘여호와의 증인’이었다.
아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수혈은 안 된다는 것. 당시에 나는 아이를 살리기 위하여 보호자 몰래 수혈을 시도했다.
차트기록을 바꿔치기하며 주사기를 통해 소량수혈을 하는 등의 방법을 동원했다.
나의 노력으로 아이는 생존했다.
그러나 결국 아이의 부모에게 발각됐다.
“왜 우리의 아이에게 수혈했느냐!”며 항의를 한 것.
대외비인 수혈 사실이 기록된 것과 약품 사용 영수증까지 들고 항의하는 부모의 행동을 보면서 내부자 소행임을 직감했다.
알고 보니 인턴이 부모에게 수혈 사실을 전한 것이다.
이후 인턴은 영상의학과를 택하여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다.
여기까지가 당시의 내용이었다.
개인의 양심을 근거로 입영거부와 수혈을 거부하는 여호와 증인.
이미 세계적인 추세가 개인의 양심을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개인의 양심이 사회적 책임이라는 가치관과 충돌댈때에 지켜줘야 하는 것인가?
그들의 양심을 어디까지 보호해줘야 하는 것인가?
2018년 헌법 재판소는 양심적 병역거부 판결에서는 “대체복무제를 포함하지 않는 해당 조항이나 신앙이나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결한 바 있다.
이로 인해 현재 시행하는 인턴제도도 ‘여호와의 증인’을 위해서 개정해야 하는 걸까?
배움의 입장에 놓인 인턴의사가 수혈을 거부하는 신념을 지켜 줘야하는 것인가.
우리는 그들을 어디까지 양보하고 인정해야 하는 걸까.
신념을 앞세워 이기주의를 보이는 행동들은 아닐까.
지금이시대에살아가는입장에서깊이고민해봐야하는문제이다.
위의 내용은 박경철 의사의 책인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에서 나오는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