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우주과학의 아버지, 첸쉐썬(錢學森.
전학삼. 1911~2009)의 삶이 재조명되면서 화제다.
천쒜썬, 그는 1911년 12월 11일에 중국 항저우에서 태어나 2009년 10월 31일 향년 91세의 나이에 사망한 중국의 우주과학자이다.
청나라 시기에 태어난 그는 아버지를 따라 베이징으로 이주한다. 베이징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당시 그는 대학입학을 위해 치른 시험에서 전국 3위를 할 정도로 머리가 뛰어났었다.
중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천쒜썬은 국비장학생에 선출이 되고, 미국 MIT 공대에서 기계공학 석사과정을 밟게 된다. 세계적 석학들이 있는 MIT 에서 석사를 취득한 그는 실험중심의 MIT에서 이론과 수학 중심의 연구를 하는 칼텍으로 가서 박사과정을 시작한다.
칼텍에서 로켓동아리 활동을 하며 여러 실험에 참여한 그는 미국 정부의 스카웃 제의를 받게된다.
미국정부 산하 NASA의 제트추진연구소의 연구원이 된 천쒜썬은 칼텍에서 항공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함과 동시에 미해군에서 중령급 대우를 받으면서 2차 대전동안 미국의 미사일 개발에 기여한다.
미국 정부를 위해 일을 하던 천쒜썬은 탄탄대로를 걷는 듯 했다.
그러나, 당시 마오쩌둥의 공산당과 장제스의 국민당 간의 싸움에서 공산당이 승리를 거머쥐게 되고 중국 전역의 공산화가 진행되자 미국은 중국을 적국으로 공식 지정하게 된다.
이러한 분위기 하에서, 미국 내 공산주의 색출운동인 맥카시즘이 퍼지게 되고 결국 우주과학자 천쉐썬은 단지 중국 국적을 가지고 있다는 명목하에 긴급 체포 된다.
혐의가 분명하지 않지만 , 그가 미국 군사기밀을 많이 알고 있고 중국계라는 이유때문에 그는 출국금지 조치를 비롯하여 불법체류죄로 가택연금 선고를 받게 된다.
5년간의 가택연금을 비롯하여 각종 박해를 받은 그는 결국 미국과 중국의 포로교환에서 대상자가 되며 중국 본토로 돌아가게 된다.
미국을 떠나기 전에 만난 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 나는 이제 다시는 미국에 돌아올 계획이 없다.” 라는 말을 남겼다.
미국에서 돌아온 천쒜썬은 중국의 수장인 마오쩌둥의 열렬한 환대를 받는다.
천쒜선은 중국 당국의 적극적인 지지하에 중국의 로켓과학을 비롯하여 우주과학 연구에 박차를 가한다.
현재 중국의 막강한 군사력의 바탕에는 천쒜선이 개발한 미사일들이 있다.
다음은 그가 개발해낸 미사일들이다
그의 미사일 연구는 중국 최초의 인공위성인 동방홍의 기반이 되었다.
천쒜썬이 개발한 둥펑-3의 개량형인 인공위성으로 중국은 소련-미국-프랑스-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다섯 번 째로 자국기술로 우주에 진출한 나라가 된다.
희대의 천재 과학자였던 그는 정치적으로 여러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러나 중국의 로켓-미사일-핵무기 개발에서 그의 영향력은 지대하다고 볼 수 있다.
그가 죽기 전, 병상에서 있을때 중국의 현재 주석인 시진핑이 그를 방문했을정도로 그의 중국내 위상은 엄청나다.
미국의 박해를 비롯하여 추방을 당한 그의 화려한 일생은 2009년 98세의 나이로 마감되었다.